성(건축)[파마]

최근 수정시각 : 2019-06-08 13:19:19

분류문화재성채방어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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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Castle/Keep/Citadel/Hold 1.개요 2. 어휘 2.1.한국어 2.2.유럽 제어 3.역사 3.1기원 3월 2일 고대3월 4일 대포의 등장과 성형 요새3월 5일 근대3월 6일 제이차 세계 대전 후의 쇠퇴3월 7일 전초 기지로서의 역할 4. 방어 목적 이외의 발전4월 하루 도시로의 발전 4.2개인 거주지로 4.2.1%부동산 거래 5.1%패턴 6.1%1.1%6.1%1%1%1%0.2.1. 일본 10.2.2. 중국 10.3. 유럽 10.3.1%독일 10.3%2%러시아 10.3%3%영국 10.3%4%폴란드 10.5%프랑스10.4명 미국 10.4월 하루 캐나다 10월 4일 2일 미국 11월 11일 가상의 성·요새11월 하루 이동 요새 1.개요[편집]

적의 공격이나 습격에 대비하고 흙· 돌 따위로 구축한 방어 시설의 총칭.기본적으로는 방어용 시설이다.시대나 지역 용도에 따라서 여러가지 양식이 나타나게 되었다.2. 어휘[편집]

2) 1. 한국어 [편집]

현대 한국어에서는 포괄적으로 각종 야생 동물이나 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되기 때문에 지어진 성벽에 둘러싸인 지역을 가리킨다.옛날에는 “잣”이라고 말했다.15세기까지는 “성”보다는 “잣”가 범용적으로 사용되었는지,”석보 서로 절”에서는 “성은 잣이다”라는 식으로 협주(일종의 주석)을 붙였다.기타 순 한국어로는 제, 쟈크(신라어), 홀, 구루, 책 그룹(홀,고구려 고구려어), 키, 키(기 자신 백제어)가 있다.그래서 한국 각지의 옛날의 고유 지명을 보면”제(또는 그럼 고 자살 등)”,”홀(미추홀 메고 홀 등)”,”기(또는 지, 노 사지, 두 인지”등)”등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앞으로 해당 지역이 모두 삼국 시대에 성이 있던 곳임을 알 수 있다.참조 링크 1참조 링크 2일본 서기에 나오는 한국의 성의 명칭 마을(스키)[1]:의류 마을(오루 스키), 주류 수기(두루미 스키).두 마을은 백제의 주류성이다.일본 서기에는 주 엄마 성(도 주시)도々 기류 산(고 온 떼)라고 기록되어 있다.모라(도덕):구례 모라 성(클레 무라노 회).구례 산(클레 무레[2])라고 부르기도 있다.왜인 오미 치노 카미의 어그로에서 굳이 쿠지 하타 오사무 등의 성이 함락되고, 다쿠 순국의 영토에 백제의 구례 모라 성이 들어선다.신라에서는 왕성을 건모 나라고 불렀다고 한다.지식:이사 제 머리 나 성(이사 제 머리 나성리;일색 무라노 사 지성;사시):대성의 훈이 코니시에서 백제에서 대성을 부른 말 같다.코니는 “이누이 요시유키의 건”과 같은 말로 크다는 뜻이다.신라의 시골 노래 혜성곡으로 성을 성이라고 적고 있다.질은 끝 소리의ㅅ이고, 성의 순 한국어”잣”을 쓴 것으로 보고 있다.이탈리아 지치부 예의 지감기(조기 브레들 캉키)처럼 질은 시로 읽힌다.나 도미 사토(고 호리)[3]:능력 비기 푸리 배평이라고도 한다.[4]기본 푸리는 순 한국어 마을의 옛 말로 추정된다.일본에서도 타이라 시군을 호수 호리다며 행정 구역 이름으로 사용했다.쿵마울다는 의미로 해석하지만, 금 물효은 → 키 뭉효은쿰물효은은 쿵물으로 불리며 곤길지을 코키 시라고 해서 쿵볼쿵마울다는 뜻이 옳다.[5]건축 발식 성( 다하는 검은의 사시)/도구 로죠( 다한 것 만):건축 발식 성과 도구 로죠는 같은 성의 명칭으로 고구려와 신라가 싸운 기록에서 나오는 성의 이름이다.시키, 종구랑이 성, 마을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탉을 죽인다

“성”이란 단어는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발달하고 용례가 비교적 다양하다.”성”이란 단어는 일반적으로 근대 이전의 시대까지 방어 시설을 의미하고, 아래의 성형 요새까지 성에 포함시키기도 한다.한편, 콘크리트를 사용한 벙커, 토치카 등은 성이라고는 부르지 않는다.한편”요새”라는 말은 군사적 시설에 한정되어 있다.오늘날에는 영어의 “fortress”에 해당하는 번역어로 쓰는 것이 많다.방어 시설의 어느 단계에서 “요새”라고 부를지는 정해지지 않은 것 같다.대개 근대 이후에 거주지의 기능과 분리된 방어 시설을 “요새”라고 부르는 것이 많다.2.2. 유럽 제어[편집]

‘성’이라는 단어는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발달하여 용례가 비교적 다양하다. 성(城)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근대 이전 시대까지의 방어 시설을 의미하며 아래 성형 요새까지도 성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반면 콘크리트를 사용하기 시작한 벙커, 토치카 등은 성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반면 요새라는 말은 군사적 시설에 국한돼 있다. 오늘날에는 영어의 ‘fortress’에 해당하는 번역어로 쓰는 경우가 많다. 방어시설의 어느 단계부터 요새라고 부를지는 정해지지 않은 듯하다. 대개 근대 이후 거주지 기능과 분리된 방어 시설을 ‘요새’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2.2. 유럽제어 [편집]

3.1. 기원[편집]

성이 언제부터 세워지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다만 신석기 혁명 이후 가족 단위의 원시 집단이 대형화되어 하나의 부락을 이룬 때 마을 외곽에 설치한 시설이 성의 기원과 보는 것이 타당하다.처음의 요새는 사람이 넘을 수 없는 수준으로 담을 높이 쌓게 했겠지만, 넘으려는 사람을 공격할 수 있도록 담 위로 쉽게 오르도록 하는 방식으로 발전한 것이다.현재까지 발견된 발굴이 끝나고 보고된 최고의 성곽 도시는 이스라엘의 이에리코으로 BC8000년 이전의 것으로 판명됐다.이 밖에도 문명의 4대 발상지에서 모두 성의 구조가 확인되면서 적어도 이스라엘의 예리코 성이 축조된 시기 이전에 성이라는 방어 시설의 개념이 존재하고 이후 세계 각 지역에 점차 전파됐고 세계 4대 문명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허 문명으로 전파된 것으로 파악된다.3.2. 고대[편집]

중국 춘추 전국 시대 및 삼국 시대 때 중국은 성을 쌓는데 벽돌을 이용하지 않았다.즉 삼국지 시리즈의 벽돌의 성벽은 허구라는 것이다.당대의 성벽을 공법은 일단 땅에 하브지를 넣고 그 위에 건초 옷감[15]을 쌓고 다시 흙 반죽을 쌓는 방식을 되풀이했다.도중에 건초 반죽을 넣는 이유는 건초가 흙을 잡고 성벽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그리고, 한번 쌓을 때마다 최대한 세우고 성벽의 내구도를 높였다.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타클라마칸 사막에 있는 만리장성이 시작된 부분의 유적.전술한 방법으로 성벽을 쌓았다.만리장성에서 벽돌로 만들어진 부분은 명 이후에 건설을 시작한 부분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으로, 삼국 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부분은 이 공법을 써서 만들어진 것이다.3.3. 중세[편집]

중국 춘추 전국 시대 및 삼국 시대 때 중국은 성을 쌓는데 벽돌을 이용하지 않았다.즉 삼국지 시리즈의 벽돌의 성벽은 허구라는 것이다.당대의 성벽을 공법은 일단 땅에 하브지를 넣고 그 위에 건초 옷감[15]을 쌓고 다시 흙 반죽을 쌓는 방식을 되풀이했다.도중에 건초 반죽을 넣는 이유는 건초가 흙을 잡고 성벽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그리고, 한번 쌓을 때마다 최대한 세우고 성벽의 내구도를 높였다.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타클라마칸 사막에 있는 만리장성이 시작된 부분의 유적.전술한 방법으로 성벽을 쌓았다.만리장성에서 벽돌로 만들어진 부분은 명 이후에 건설을 시작한 부분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으로, 삼국 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부분은 이 공법을 써서 만들어진 것이다.3.3. 중세[편집]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중세 초기의 성벽(모트 앤 베일리)[16]유럽의 경우 대략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봉건 사회 지배자의 무장한 주거지로 점차 견고한 것으로 발달했으며 3개 역할을 맡은 건조물이었다.영주의 주거, 성이 구축된 지역의 방어 시설로서의 한 요소, 비상시의 백성의 피난소 등의 역할이었다.영국이나 프랑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기의 성은 성터 주변에 해자를 파고 그 파낸 흙을 쌓아 원뿔형의 분지를 구축하고 그 정상에 목조로 탑 위의 건물인 행진을 내세우거나 혹은 대지에 접속시키고 목책과 해자를 둘러싼 간단한 것이었다.이 형식은 11세기경까지 널리 보급된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11세기에는 행진을 석조로 한 사례도 나타나고 동시에 굳건한 성벽을 둘러싼 형식도 발달했다.성벽은 요소 요소가 탑으로 강화되고, 그것들의 정상부에는 패인 푸른 흉벽 또는 성가 나무가 설치됐다.침입하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서 회랑식 주로 행랑이 만들어지고 그 위에 마슈크리로 불리는 투석 입이 마련됐다.그런 성벽에 둘러싸인 성곽 중 가장 초점이 되는 건물은 유지하며 그것은 공방전에서 마지막 거점이 되기 때문에 당연히 가장 견고하게 만들어졌다.서유럽에서 보이는 초기의 안착은 사각형 또는 장방형 평면 건물이고 거기에는 우물 그레이 홀과 영주의 가족과 하인들이 거주하는 방, 창고 기타 장기간 농성한 모든 설비가 마련되어 있었다.예배당도 있었다.벽은 매우 두꺼운 뿔에는 큰 오른쪽 탑이 붙고 높이는 2층 내지 4층으로 되어 있다.입구는 통상 2층에 설치되거나 떼어 낸 사다리로 출입한다.이런 사각형 유지는 복수의 방을 배치하기엔 편리하지만 파괴 해머의 공격에는 약했다.한쪽 벽면에서 오는 공격을 막으려고 한쪽 벽에서 측면 공격을 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그런 결점을 없애는 데 유지의 평면을 원형이나 다각형으로 만들게 된 것은 제3차 십자군 원정 이후이다.서유럽에 동방이 영향을 미친 것의 하나이다.원형과 다각형의 예로는 프랑스 세자르·에탄프·프로 밴 영국 코니스보로 등이 있다.한편 지중해 동쪽에는 11~12세기를 통틀어 비잔틴의 전통이 이어지면서 1099년 예루살렘 함락 후에는 십자군에 의해서 그 같은 동방의 축성술을 살리고 안티오키아에서 아카바 만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에 견고한 성이 몇개나 구축됐다.12세기 사오 뺀, 마르 가트, 그리고 클라크·데·슈우아리에 등의 보루가 그 예다.수차례에 걸친 십자군 원정에서 동방의 축성술을 알게 된 서구의 기사들의 체험은 12세기 말경부터 본국의 축성술에 반영됐다.키타 프랑스 가얄 성은 웅장한 성으로 알려졌으며 그 뒤 이런 식의 성채 건축은 13세기를 통틀어 더욱 개량된.프랑스의 경우 1917년에 파괴된 쿠치 송도 계곡을 내려다보는 대지에 세운 걸작이며, 그 유지는 지름 31.5m의 원통형으로 벽의 두께가 기부에서 약 7.5m나 됐다.독일에는 바위산 위에 세운 파르 켄 베르크 성이 있고 영국의 예로는 런던 탑·윈저 성·에든버러 성 등이 꼽힌다.3.4. 대포의 등장과 성형 요새[편집]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중세 초기 성벽(모트&베일리)[16] 유럽의 경우 약 11세기부터 13세기에 걸쳐 봉건사회 지배자들의 무장 주거지로 점차 견고하게 발달하여 세 가지 역할을 하는 건축물이었다. 영주의 주거, 성이 구축된 지역의 방어 시설로서의 한 요소, 비상시 백성 대피소 등의 역할이었다.영국이나 프랑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기 성은 성터 주위에 해자를 파고 그 파낸 흙을 쌓아 원추형 분지를 구축하고 그 정상에 목조로 탑 위 건물인 킵을 세우거나 대지에 연결시켜 목책이나 해자를 둘러싼 간단한 것이었다. 이 형식은 11세기경까지 널리 보급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1세기에는 킵을 석조로 한 예도 나타나고, 동시에 견고한 성벽을 둘러싼 형식도 발달하였다.성벽은 요소 요소가 탑으로 강화되었고, 그들 정상부에는 움푹 패여 불록한 흉벽 또는 성가목이 설치되었다. 침입하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 회랑식 주랑이 만들어졌고, 그곳에 마슈크리라고 불리는 투석구가 마련되었다. 그러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곽 중 가장 초점이 되는 건물은 킵이며, 그것은 공방전에서 최후의 거점이 되기 때문에 당연히 가장 견고하게 만들어졌다.서유럽에서 보이는 초기의 킵은 사각형 또는 직사각형 평면의 건물이었으며, 그곳에는 우물 회색 홀과 영주의 가족과 하인이 거주하는 방, 창고 및 기타 장기간 농성에 필요한 모든 설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예배당도 있었다. 벽은 매우 두껍고 모서리에는 큰 우탑이 붙어 있으며 높이는 2층 내지 4층으로 되어 있다. 입구는 보통 2층에 설치되거나 떼어낸 사다리로 출입한다.이런 사각형 유지는 여러 개의 방을 배치하는 데는 편리하지만 파괴해머 공격에는 약했다. 한쪽 벽면에서 오는 공격을 막기 위해 다른 한쪽 벽에서 측면 반격을 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결점을 제거하기 위해 킵 평면을 원형이나 다각형으로 만들게 된 것은 3차 십자군 원정 이후의 일이다. 서유럽에 동방이 영향을 준 것 중 하나이다.원형과 다각형의 예로는 프랑스의 세자르 에탐프 프로방, 영국의 코니스버러 등이 있다. 한편 지중해 동쪽에는 11~12세기를 통해 비잔틴 전통이 이어졌고, 1099년 예루살렘 함락 이후 십자군에 의해 그러한 동쪽 축성술을 살려 안티오키아에서 아카바 만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견고한 성이 여러 개 구축되었다. 12세기의 사온, 마르가트, 그리고 클라크 데 슈발리에 등의 성채가 그 예이다.여러 차례 십자군 원정에서 동방 축성술을 알게 된 서구 기사들의 체험은 12세기 말경부터 본국 축성술에 반영됐다. 북프랑스의 가야르 성은 웅장한 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이러한 형태의 성채 건축은 13세기 내내 더욱 개량되었다. 프랑스의 경우 1917년 파괴된 쿠시손도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대지에 세운 걸작이며, 그 킵은 직경 31.5m의 원통형으로 벽 두께가 기부에서 약 7.5m나 되었다. 독일에는 바위산 위에 세운 팔켄베르크성이 있으며, 영국의 예로는 런던탑·윈저성·에든버러성 등을 들 수 있다.3.4. 대포의 등장과 성형요새[편집]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자세한 것은 성형 요새 문서를 참조 하십시오.대형 화약 무기가 일반화한 시점부터 그 기능을 상당 부분 잃는 듯했다.그 전에도 투석기로 성을 두드리고 본 적은 있지만 제대로 쌓은 성은 외벽 높이가 외벽의 두께보다 높고 꽤 튼튼하고 사실상 무용지물였지만, 화약의 힘으로 더 무거운 돌이나 쇳덩어리를 날려외벽이 무너지게 되는 구시대의 성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세계에서 가장 튼튼한 성벽에 꼽히는 콘스탄티노플 3겹 성벽이 오스만 제국의 거대 대포의 포격으로 함락한 사건을 패러다임 전환의 시점으로 꼽는다.[17]프랑스의 천재 공학자 보반(Vauban)가 설계한 공격 거점으로 성곽에 발전하고 공격자의 머리를 더 괴롭혔다.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보방은 여러 요새화된 시설을 건설하면서 방어 지역에 포병을 상시 배치하고 적의 접근 경로를 아군의 방어 방향 측에 강제하면서 순차적으로 적을 소모시킬 수 있는 별 모양의 요새를 설계한다.요새의 벽면도 약 60도 정도의 경사를 주고 포탄의 직격탄을 경사로 쳐내며 보병이 쉽게 날아 오를 수 있다 없게 구축하고 당시의 요새의 정점을 만들어 냈다포병이 눈으로 보면서 사격하던 시대까지 최종 보스.이 때문에 유럽과 북 아메리카 등 열강의 손이 언급한 모든 지역에서 해당 형태의 요새가 많이 지어졌다.대다수는 현재도 남아 있어 유럽의 경우는 처음부터 요새 속에 마을이 자연스럽게 위치한 경우도 많다.이어 일본의 하코다테에도 보양식 요새인 고료 카쿠 성이 있다.수직에 가까운 쌓고 단순히 공격자가 쉽게 못 올라가도록 한 구식 성벽 대신에 약 60도 경사를 통해서 공성포가 강타할 수 있도록 하는 설계로 계산된 각도의 성 가수를 이용하고 성내의 대형 요새 포에서 적의 공격이나 참호를 분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내부에 주둔 병력을 활용하고 적의 병참선을 공격할 수 있는 형태의 거점으로 변신한다.이런 형태의 거점으로서의 성은 제일차 세계 대전까지 유효한 방어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그러나 이러한 성형 요새도 결국 곡사포로 고폭탄이 전면에 등장하고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게 된다.대포의 발전에 대비한 이런 형태의 축성술은 유럽에서 주로 나타나고 다른 지역에서는 화약 무기의 발달이 다소 주춤하는 이런 특징적인 모습의 성이 발달하지 않았다.이후 열강 시대부터 근대에 완전히 넘어가면서 이전까지 사용된 성과는 전혀 다른 콘크리트 요새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그래도 특정 양식과 부를 수 있는 것이 없을 뿐, 대포에 대비에는 이것 저것 많이 나타나고 조선의 수원 화성은 그런 것의 도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잘 나타낸 예라고 평가되어 유네스코 세계 유산이 된 바 있다.근세 열강이 커지면서, 군대를 파견하고, 그 지역에서 군사력의 우위성을 유지하기 위한 요새가 세계 각지에 건설됐다.도시를 보호하는 것도 아니며 권력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전투병만 집어 넣은 형태의 성이다.3.5. 근대[편집]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자세한 것은 벙커 문서를 참조 하십시오.철근 콘크리트라는 무지한 자재가 나오고 높은 수준의 방어력을 추구하는 거점을 짓는다.이 개념의 극단이 유명한 마지노선과 대서양 방벽 외에도 콘크리트 전함으로 불리는 드럼 요새 같은 극단적인 방어용 시설이 등장하게 된다.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요새의 최종 형태의 하나인 드럼 요새.콘크리트 전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요새의 최종 형태 중 하나인 드럼 요새. 콘크리트 전함으로 불리기도 한다.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역시 요새의 최종 형태의 하나인 제이차 세계 대전 당시 베를린”동물원 대공 포탑”이러한 거점을 정상적으로 치우기에는 막대한 희생이 필요하게 되어, 이를 부수기 때문에 온갖 방법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까지 동원된다.전략 개념으로 우회해서 후두부를 기록해야 하지만 당장 없애야 하는 전술 레벨에서는 얼마나 피를 흘려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한편 일반적인 야전에서도 기관총과 포병 화력의 확대로 방어 진지를 구축할 필요가 있었으나 지상에 뭔가를 세우고 단기간에 유익한 방호력을 제공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지하에 파는 방식을 택했다니, 그것이 참호의 등장이다.일반적으로 건축물임을 “성/요새”라고 부르기 때문에 참호 같은 간이 방어 시설은 “성/요새”에 포함시키지 않지만, 참호전 같은 특수한 전장에서는 수십 km에 이르는 거대한 구조물이나 됐다.3.6. 제이차 세계 대전 후의 쇠퇴[편집]이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공군력이 엄청난 발전하고 공군을 부르고 벙커 버스터 한 발로 무지하게 두꺼운 지하 벙커도 보내게 될 수 있게 됐다.그리고 공군을 동원할 수 없어도 핵무기가 있어서 단 한발감.이런 일에 대응하는 방어책은 비용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고, 오히려 그 돈으로 공격 수단에 투자한 것이 이득이었다.그래서 현대의 군대는 요새 같은 시설을 건설하려 하지 않는다.다만 북한처럼 상정한 적군이 미군처럼 막강한 경우, 요새급의 진지나 지하 요점 새를 만들지 않겠다고 개전과 동시에 참살을 면할 수 없기 때문, 오랜 세월과 엄청난 인원을 동원하는 것이 있어도 지하 도시급의 요새를 전국 각지에 건설한다.그래도 지하입니다 새의 최악의 단점 중 하나는 지하에 있다는 데 지하에 있다고 습기에 약해지고 환기가 꼭 필요할 수밖에 없다.러시아 중국 등 핵 보유국라면 직접적 위협을 느끼지 않으면 핵무기가 아닌 독 가스로 제압할 가능성이 높다.일례로 제1차 세계 대전이 참호전 양상으로 흐르는 독일군이 신호탄을 올리면 누구나 독 가스를 사용했다.물론 제독의 절차가 좀 고민하는겠지만 원래 핵무기 방사능이나 독 가스 등 다르지 않다.물론 지하 요새에 자체 정화 시설 같은 것을 갖추어 양압 장치 등을 이용하고 화생방 방호를 완료할 수준이면 안 통한다고 생각합니다만.미국의 경우는 벙커 버스터로도 안 된다면 해당 폭탄 내부를 배낭에 바꿔서라도 완전히 요새를 파괴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대한민국의 경우 기계화 전력과 항공 전력이 북한보다 열세였던 1980년에 서울 북방에 옛 성처럼 성벽과 성문을 갖춘 “수도권 방벽”라는 요새를 쌓기도 했다.3.7)전초 기지로서의 역할[편집]대한민국의 경우 기계화 전력과 항공 전력이 북한보다 열세였던 1980년에 서울 북쪽에 옛 성처럼 성벽과 성문을 갖춘 ‘수도권 방벽’이라는 요새를 쌓기도 하였다.3.7. 전초기지로서의 역할[편집]4.1. 도시로의 발전[편집]고대 문명권 이후 수많은 민족의 번성과 폐망, 전쟁 등으로 성곽 도시 및 요새의 형태에서 더 공고하게 발전하고 중세 유럽 시대에 절정을 맞는다.서양에서는 봉건 시대에 장원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다.옛 성의 이미지로 이미지가 박제된 한국의 성과와 달리 지금도 중국에선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도시라는 뜻이다.중국어로 도시를 “시”으로 알려졌다.조선 시대 한성은 성벽의 것이 아니라 성벽을 포함하여 그 안에 있는 도시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수원 화성도 마찬가지다.이런 성 성벽은 방어용인 동시에 도시 구획의 역할을 하다.아시아 지역과 유럽 지역 공통으로 17세기까지는 국가를 불문하고 대도시, 권력의 상징이었다.하나 지으려 해도 재료가 많이 드는 인부도 많이 필요하고 비용도 자연스럽게 많아지므로, 성벽의 건축이 보통 대형 건물 1,2채 짓는 것보다 더 어렵다.자연스럽게 시골 동네보다는 권력자가 거주하는 지역과 인구가 많은 대도시에 세우는 게 보다 바람직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부르주아”(Bourgeois)란 단어의 어원은 “성(Bourg)내부에 사는 사람”이다.성도 건축물인 만큼 유지·보수 비용이 걸리는 데에 공간도 그리 넓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가 어려웠다.그래서 성안에서 거주하게 되면 당연히 유지 비용을 세금으로 징수하기도 했지만 이것이 일반 서민이 부담하기에는 큰 데에 기본적으로 이런 곳에는 땅값이 높을 수밖에 없다.결국 비용에 견디기 어려운 일반 국민은 성 밖에서 살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성내에는 상공업 종사자, 귀족 같은 이른바”돈을 만지는 사람”만 사게 된 것이다.이로써 “성내에 거주하는 사람=재력가=부르주아”가 된 것이다.지금은 성 안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는 뜻은 사라지고 재력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만 남았다.물론 유럽이나 일본의 경우, 이러한 의미를 갖는다.일본의 조카 마치 거주자의 경우도 어떤 면 부르주아의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본다.한국이나 중국처럼 중앙 행정 체계가 제대로 정착한 경우는 봉건 사회와 달리 성의 의미가 권력자의 보호 기구가 아니라 행정의 하위 단위여서 대개의 경우 그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이 성 안에서 거주할 수 있었다.그러므로 공성전이 발생했을 때 전자의 경우 전투원을 중심으로 성 내에서 농성을 보지만 후자의 경우, 비전투원도 입성하며 함께 농성을 하게 되는 경우가 보인다[18].특히 일본의 경우, 전자의 경향이 많다.시오노 나나미의 “남자들에게 “이란 에세이로 이런 차이를 흥미로운 관점에서 보고 있다.4.2. 개인 거주지로서[편집]중세 말부터 15~16세기까지 총기 사용이 급속히 발달하게 되면 기존의 방어 시설로는 효과가 없어지고 그것까지 성이 갖고 있던 곳과 요새를 겸한 2가지 기능이 분리되어 성은 순전히 군사적 요새로 거관으로 저택에 엇갈렸다.르네상스 시대의 루아르 강 유역에 세워진 한 무리의 성관(성관)은 그런 중세의 축성술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거관이다.주로 일부 귀족이나 왕족의 취미나 거주 목적으로 일종의 저택과 별장으로 지어졌다.대표적인 예가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다.노이슈반슈타인성은 당시 바이에른 왕국의 왕이었던 루드비히 2세가 오페라”로엔그린”에 나오는 성을 재현하고 싶어 세웠다고 한다. もちろん、これが途方もないドンジラールだったため、まもなくルートヴィヒ2世はこのようなとんでもないことに頭を悩ませた議会と国民によって廃位され、精神病院に入れられた(…)。そして彼の言葉でも良くなかった。이는 당시에 불어 닥친 낭만 주의 열풍에 따른 것으로 이 시기부터 성이 부유층 저택과 별장으로 애용되기 시작했다.그래서 성이 아무 쓸모 없게 된 20세기에 지어진 성도 있는가 하면 성이 발달하지 않은 북 아메리카에 세워진 성도 있다.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 앤젤레스에 위치한 허스트 캐슬이 대표적이지만 문제는 이것이 영국 웨일스에 있는 800년 전의 수도원을 부수고 세운 것으로, 문화재 훼손과 가루가 될 정도로 깐.그것 이외에는 캐나다 유일한 성벽 도시인 퀘벡 시티가 있다.살기에는 그다지 편한 편이 아니다.겨울은 너무 추운 데 편의 시설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옛 건축물인 만큼 단열과 습기의 배출이 잘 되지 않고, 겨울에는 매우 춥다.실제로 진짜 석조로 지어진 오리지날 중세 성은 여름에도 시원하다.개수도 대부분 지역 법상 쉽지 않고 내/외장재를 현대식에 재시공하지도 못하고 도심과 매우 멀리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생활 방식으로 주거용으로는 사실 부족한 면이 많다.4.2.1. 부동산 거래[편집]오늘도 유럽에서 성은 주거용 저택으로서의 가치가 있어서 거래되는 것은 있다.하지만 관리 인원이 많이 필요로 유지비 폭탄을 맞고[19]시골에 있어 교통마저 불편한 경우가 많아 대부분이 생각보다 고가에 거래될 수는 없다.보통 부자가 별장용으로 하나 구입하는 정도.대개 150만유로 정도에서 시작한 정말 비싼 것은 5천만유로 정도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영국 랭카셔에 있는 호리까지 붙어 있는 이 멋진 성은 불과 375000파운드(약 6억 5천만원)에 내놓고 있었다.강남 아파트 전세 가격이면 당신만의 성이 한채!그럼 뭐 하니?유지비 때문에 아무도 안 샀는데.이건 좀 너무 싼 편인데, 보통 저 정도의 성에서도 수백 만유로를 넘지 않는다.레이디·가가도 스코틀랜드에 독자적인 성이 하나 있다.다만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국보급성이라면 이런 식으로 쉽게 거래될 수는 없을 것이다.사실상 상기 링크에 연결된 성도 겉보기는 중세식의 성에 보이지만 사실은 거의 파괴된 것을 19세기 후반 중세를 모방한 고딕 부흥 운동 양식으로 재건한 것이다.정말 중세 당시의 건축물이 완전히 남아서 문화적 가치가 막대한 성(런던 탑이나 도버 성이나, 웨일스에 에드워드 1세가 세운 일련의 성이나)은 국가나 문화재 재단 차원에서 철저히 관리한다.5. 기능[편집]주로 성 역할은 높은 튼튼한 성벽에서 적들이 도시에 진입할 수 있는 경로를 최소화시킴으로써 적의 공격 루트를 한정시키는 억제 효과가 있으며, 또 방어 측 병사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전투 중에 안정된 엄 폐물을 확보할 수 있는 다양한 이점이 있었다.냉 무기 시대의 성의 위력은 대단한 것으로 제대로 쌓은 성에 식량이 충분하면 성안부에 전염병이라도 돌지 않는 한 공격하고 온 적군이 음식이 없어지고 물러날 때까지 방어할 수 있었다.일반적으로 적을 전투에서 섬멸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공격 측과 방어 측의 병력 비율을 3:1로 할 때, 성이 있는 경우 이 비율이 5:1부터 10:1까지 오르자 알고 있다.방어 측이 성내로 일정 규모의 기동성 높은 부대를 갖추고 있는 경우 공격자 측이 공격하는 성을 완전히 에워싸고 포위하지 않으면 어느 구석에서 나왔던 적군에게 뒤통수를 맞게 마련이고 포위한 공격자가 물품이 바닥나면서 물러설 때 도덕 도덕과 배를 채운 방어 측 기병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일도 드물지 않다.성을 공략하기 위한 공성 무기를 제작하는 방법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러한 방법은 무기 제작 때문에 상당한 노력과 자원이 접어들게 되며, 공성 과정에서 병력이 손실될 것이다.손자 병법에서도 이런 식으로 적의 성을 공격하는 것을 가장 하책으로 본 정도다.[20]당초 역사적으로 봐도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은 공략에 1만 단위의 보병과 뛰어난 공병을 투입 가능했던 로마군 중동 국가 중국군 정도였다.대포가 나온 뒤에도 콘스탄티노플의 같은 대규모 성은 거의 공격이 불가능했을 정도다.상세는 공성 전 문서를 참조.공성전 시에 대형 공성포를 운반할 수 있는 참호를 수성 측의 사거리 밖에서 뻗어 만들어 거점에 공성포가 설치되는 시점에서 수성 측이 명예로운 항복을 할 수 있었다.참호를 팔 수 없는 유격 부대와 이 유격 부대를 처리하려는 유격 부대 간 전투가 주요 공성전이 될 정도이며, 이러한 내용의 예는 삼총사 라·로시에루 공방전 장면에서 나온다.규모도 10여명을 간신히 수용할 수 있어 도시 전체가 일종의 요새가 된 것까지 다양한 땅 밖으로 나간 시설물은 거의 없기 때문에 지하에 100km를 넘는 지하 통로에서 거미줄처럼 연결되고 있는 구조의 지하 요새도 있다.6. 양상[편집]높은 벽을 쌓아 침입을 방지한다는 원리는 같지만 그 형태와 목적에 의해서 종류가 나누어지다.만리장성이나 천리 장성처럼 국경 등에 오래 담을 쌓은 장성이 동서양을 불문하고 존재하는 도시의 외곽을 벽으로 둘러도시 성곽, 유럽과 일본에 존재하는 권력자 거주용 성관(성관), 클라크·데·슈우아리에 같은 전략적 요충지에 설치하고 적의 공격을 견제하거나 방어하는 용도에 세워진 요새형 성 등.같은 나라, 지역 내에서도 시간의 흐름으로 전쟁 양상의 변화에 의해서 성의 형태는 각각 다르다.한국과 중국 등에서는 권력자를 위한 거주 공간을 성처럼 쌓보다는 대도시 내에 궁전을 짓고 담으로 구분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사람이 모여서 교역하기 쉬운 대도시는 전체를 둘러싼 성곽에서 방어하며 거리에 전투용 요새 성을 따로 두고 거점 방어에 이용한 것. 그러므로 차단/요격 전에 성공하지 못하면 대도시는 꽤 쉽게 적의 손에 넘어갔다.농경지 약탈은 어차피 막기 어렵고 인명 보호에는 도성보다 대피용 요새가았다.주요 거점을 방어하기 위해서 세워진 순수한 요새형성도 있다.중국의 만리장성이 대표적이다.이런 요새형의 성이 따로 있는 것이 바로 아시아권에서 성과 성관을 따로 보는 이유다.왜냐하면 최근 성에는 거주용의 성관(성관)을 지어도 없고, 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혼란기의 중국과 서양은 약간 사정이 다른 옛 대도시는 도시 외곽의 방어성이 필수였다.큰 나라가 통째로 건너가보다는 도시 단위로 공격을 받을 많은 경우 도시성 자체 방어 능력이 중시된 것이다.중세 유럽, 전국 시대 일본 등 짧은 전쟁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곳에서는 도시의 방어보다는 권력자의 거주 구역을 중점 보호하는 형태의 성이 나타난다.이쪽은 직업 군 사람의 전투에서 일반인 마을을 약탈하기보다는 권력자의 목을 따서 구역 일대를 손에 넣고 형식의 전투가 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중국의 성은 평지성이 방어의 기본이기 때문에 성벽을 매우 높게 세우고 다중 문 방식의 성문을 채용하고 평지성이지만 높은 방어력을 보였다.일본의 경우 성문이 기본적으로 작은 위에 1,2개밖에 없다,”상노 말”,”니노 마루”,”본성”로 불리는 삼중 성벽 구조를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 들어온 적군을 항상 사방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내부 구조도 복잡하게 만들고 역사상 손꼽히는 매우 높은 방어력을 뽐냈다.다만 그 대가로 교통과 거주 편의성 등 평시 도시로서의 성 기능을 많이 포기했다.북 아메리카에는 성이 발달하지 않은.성의 개념이 미국에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가 이미 성이 도움이 되지 않게 된 시기와 겹친 탓이다.당시 대포에 맞아 무너진 부분을 빨리 복구하기 위해서 나무로 벽을 두른 요새가 대세가 되고 돌로 지은 성 자체가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그리고 성을 단순히 저택으로 사용하더라도 그런 곳에 거주하는 귀족들이 없었다.중국의 성은 많은 인구 때문에 트럭 2대가 지나가도 좋을 만큼 넓은 성채를 자랑하고 있지만 이는 중국의 경우 오랫동안 통일 국가를 유지했기 때문에 다수의 병력을 운용하고 성곽 방어도 그에 맞게 변형한 결과로 보인다.한편 전국 시대의 일본은 다이묘가 긴 전란으로 산성에 도피용 산성을 따로 만들거나 산성에 주로 거주하는 경우까지 생겼지만, 이런 일본의 산성은 평지의 성과 마찬가지로 큰 데 복잡한 방호 시설이 들어섰고, 더 난공 불락을 자랑했다.이지만, 교통의 불편은 여전히 문제이므로 성 보호 기술이 발달된 이후 날로 평지성, 히라야마성에 주전 자리를 내줄 판이다.요새형 성곽의 정점을 보고 싶으면 인도에 가면 된다.일본은 전국 시대를 거치고 긴 내전을 벌이는 성의 구조가 철저하게 보완되며 성곽 특유의 독특한 구조가 매력이지만, 인도의 경우 중국에 뒤지지 않는 인구 강국인 특성과 다민족 국가인 일본 못지않은 내전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일본과 중국의 장점을 혼합한 듯한 요새 구조를 갖고 있다.게다가 인도는 토양 기반이 사암 것으로 일본보다 더 쉽게 성을 지을 수 있어 일본보다 규모가 있는 개성 넘치는 성을 보유하고 있다.어느 정도인가 하면 인도의 한 성은 산 전체를 파고 산 자체를 요새화시킨 것도 있었고 또한 있는 것은 계곡을 깎아 상대하는 입장으로서는 그것을 어떻게 뚫다면 좋겠느냐는 정도로 터무니 없는 구조를 가진 성을 인도에서 흔하다.이런 독특한 구조 덕분에 수많은 판타지 마니아들과 작가들은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들 때 반드시 인도를 참고할 정도라고 한다.거제장 나무 면 일대의 세미 성처럼 태풍에서 농경지를 막기 위해서 만들어졌는데, 관광지가 된 사례도 있다.6.1. 한반도[편집]높은 벽을 쌓아 침입을 방지한다는 원리는 같지만 그 형태와 목적에 따라 종류가 나뉜다. 만리장성이나 천리장성처럼 국경 등에 긴 담장을 쌓는 장성이 있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하는 도시 외곽을 벽으로 둘러싼 도시 성곽, 유럽과 일본에 존재하는 권력자 거주용 성관, 클라크 데 슈발리에와 같은 전략적 요충지에 설치해 적의 공격을 견제하거나 방어하는 용도로 지어진 요새형 성 등. 같은 나라, 지역 내에서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쟁 양상의 변화에 따라 성의 형태는 각기 다르다. 한국이나 중국 등에서는 권력자를 위한 거주 공간을 성처럼 쌓기보다는 대도시 내에 궁궐을 짓고 담장으로 구분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사람들이 모여 교역하기 좋은 대도시는 전체를 둘러싼 성곽으로 방어하고 길목에 전투용 요새성을 따로 두어 거점 방어에 이용한 것. 따라서 차단/요격전에 성공하지 못하면 대도시는 상당히 쉽게 적의 손에 넘어갔다. 농경지 약탈은 어차피 막기 어려웠고 인명 보호에는 도성보다 피난용 요새가 나았다. 주요 거점을 방어하기 위해 지은 순수 요새형 성도 있다. 중국의 만리장성이 대표적이다.이런 요새형 성이 따로 있는 것이 바로 아시아권에서 성과 성관을 따로 생각하는 이유다. 왜냐하면 요즘 성에는 거주용 성관을 짓지도 않고 지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혼란기의 중국이나 서양은 조금 사정이 달랐고, 구 대도시는 도시 외곽의 방어성이 필수적이었다. 큰 나라가 통째로 건너가는 것보다 도시 단위로 공격받는 일이 많을 경우 도시성 자체의 방어능력이 중시된 것이다. 중세 유럽, 전국 시대, 일본 등 짧은 전쟁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곳에서는 도시 방어보다는 권력자 거주구를 중점 보호하는 형태의 성이 나타난다. 이곳은 직업군 인간의 전투로 일반 민촌을 약탈하기보다는 권력자의 목을 잡고 구역 일대를 차지하는 형식의 전투가 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중국의 성은 평지성이 방어의 기본이기 때문에 성벽을 매우 높게 짓고 다중문 방식의 성문을 채용하여 평지성이지만 높은 방어력을 보였다. 일본의 경우 성문이 기본적으로 작은 데다 한두 개밖에 없어 ‘산노마루’, ‘니노마루’, ‘혼마루’라고 불리는 삼중 성벽 구조를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 침입해 온 적군을 항상 사방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내부 구조도 미로처럼 만들어 역사상 손꼽히는 매우 높은 방어력을 자랑했다. 다만 그 대가로 교통이나 거주 편의성 등 평시 도시로서의 성 기능을 많이 포기하였다.북아메리카에는 성이 발달하지 않았다. 성의 개념이 미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때가 이미 성이 쓸모없게 된 시기와 겹쳤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대포에 맞아 무너진 곳을 빨리 복구하기 위해 나무로 벽을 두른 요새가 대세가 되어 돌로 지은 성 자체가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성을 단순히 저택으로 쓴다 하더라도 그런 곳에 거주하는 귀족이 없었다. 중국의 성은 많은 인구를 위해 트럭 2대가 다녀도 될 정도로 넓은 성채를 자랑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의 경우 오랫동안 통일 국가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다수의 병력을 운영하면서 성곽 방어도 그에 맞게 변형된 결과로 보인다.한편 전국시대 일본은 다이묘가 오랜 전란으로 인해 산성에 도피용 산성을 따로 만들거나 산성에 주로 거주하는 경우까지 생겨났는데, 이러한 일본 산성은 평지의 성과 마찬가지로 크고 복잡한 방호시설이 들어서 더욱 난공불락을 자랑하였다. 하지만 교통의 불편은 여전히 문제이므로 성 방호 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점 평지성, 평산성에 주력 자리를 내주게 된다.요새형 성곽의 정점을 보고 싶다면 인도로 가면 된다. 일본은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오랜 내전을 벌이며 성의 구조가 철저히 보완되고 성곽 특유의 독특한 구조가 매력이지만 인도의 경우 중국 못지않은 인구대국인 특성과 다민족국가로 일본 못지않은 내전을 일삼으며 일본과 중국의 장점을 혼합한 듯한 요새구조를 갖고 있다. 게다가 인도는 토양 기반이 사암이어서 일본보다 더 쉽게 성을 지을 수 있고, 일본보다 더 규모 있고 개성 넘치는 성을 보유하고 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인도의 어떤 성은 산 전체를 파서 산 자체를 요새화시킨 것도 있고, 또 어떤 것은 계곡을 깎아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저걸 어떻게 뚫어야 하느냐 할 정도로 터무니없는 구조를 가진 성을 인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독특한 구조 덕분에 수많은 판타지 덕후나 작가들은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들 때 반드시 인도를 참고할 정도라고 한다.거제 장목면 일대에 있는 세미성처럼 태풍으로부터 농경지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관광지가 된 사례도 있다.6.1. 한반도[편집]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삼국 시대 삼년 산성.한국에서는 삼국 시대에는 전쟁이 매우 활발하고, 실제로 전시 방어에 중점을 둔 튼튼한 성곽 도시가 전국의 요충지로 건설됐다.역사에 이름을 날린 난공불락의 성채로 평양 성, 오노 성이 있는 웅진, 소라볼도 직접적인 공성전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한국의 산성은 시대를 불문하고 입걸음 항쟁, 아오노 타츠 걸음 등 다양한 이름으로 사실상 아오노 전법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삼국 시대에는 왕성을 제외한 대부분의 성이 산과 구릉 위에 축조되었고 왕성이라고 해도 언덕 위에 형성된 경우가 종종 있었다.즉 수도에는 왕성(또는 그냥 왕궁)과 피난용 산성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고 추정되는 경우가 많다.[21]그러므로 대부분의 산성은 저장, 저수 시설이 필수이며, 실제로 발굴 조사에서도 특히 저수 시설에 대한 관리는 여러 차례 보완되는 흔적이 발견된다.이런 맥락에서 산성이 지방 행정의 치소의 역할을 했다고 추정되는 경우도 많다.한반도에 현존하는 산성 유물 중에는 건축 당시 산성 성벽의 높이가 거의 성채 수준의 곳도 많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상당수가 무너지고 그 때의 모습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전방의 국경 지대가 아닌 이상 다른 후방의 성을 유지하는 것을 소홀히 되기 쉽고, 도시와의 접근성도 낮아 필요가 없어진다고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었다.조선 시대에는 평지성이 읍성이란 이름으로 많이 지어졌지만, 외성만 있는 외부와 연결되는 정문이 많이 나오고 높이도 그리 높지 않아 방어력이 약했다.읍성은 정규군을 저지하기 위해서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관의 위엄을 높이고 행정 구역 표시, 도적 및 왜구를 막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조선은 기본적으로 적이 들어오면 읍성을 비우고 산성에서 농성하는 것이 원칙이었다.다른 나라의 성과 비교했을 때 성벽과 성관(성관)의 규모가 단순히 보이는 것은 읍성에 그런 구조물을 만들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읍성이 있지만 전란이 일어나면 읍성을 비우고 산성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군사적 측면에서 허름하였던 읍성은 임진왜란 때 이미 전국 시대를 거치고 공성전에 이의 뼈를 입은 일본군에 매우 쉽게 함락했다.지금까지 전례 없는 대규모 정규군이 주력 방어선인 산성을 돌파하면 왜군의 진로에 놓인 읍성은 빠른 속도로 점령됐다.한편 대여진 전선인 함경도는 여진족의 침략이 많아 경성 읍성처럼 웅장하고 큰 성이 존재했다.임진왜란 이후에는 읍성도 종전보다 잘 정비되는 모습을 보인다.예외적으로 읍성임에도 불구하고 잘도 세워졌고, 여러가지 방어 시설과 우치지로/외성 구분이 잘 되던 진주성의 경우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승리를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함락됐으나 왜군에 큰 타격을 주어 진군을 저지하기로 뛰어난 방어력을 보였다.조선 시대에도 일부의 산성은 조정의 명으로 새로운 축조되는 경우가 종종 있고 특히 임진왜란을 거쳐서는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에 쌓은 산성을 재활용하거나 새로운 쉽게 쌓고 왜적을 효과적으로 굶기고 막았다.이러한 산성의 기능이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나타낼 기록이 있다.한 늙은 왜인이 귀에 대고 말하기를 “왜장들은 우메요 오 『 조선이 세이노 작전을 쓰고 산성에 들어가곡물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저장할 걱정이다.수로에서 가까운 지역의 산성이라면 10년의 세월이 걸리더라도 식량 보급이 편리하고 군량을 계속할 수 있는 것에 겨우 함락시킬 수 있겠지만 만약 매우 궁벽 지역에서 성곽을 튼튼하게 다듬어 식량을 싣고 아오노 작전으로 막으면 들판에는 약탈하는 것이 없으며 나중에 이어군량이 없어질 격파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이렇게 되면 우리로서는 큰 걱정거리이다.』과 이를 항상 논의하고 있다.조선 왕조 실록 선조 실록 88권, 선조 30년 5월 18일 무신 5번째 기사도 원수권률이 적정을 상세히 보고하다7. 분류[편집]7.1. 위치[편집]성이 세워지는 위치에 따라 산성, 평지성, 평산성을 구분한다.7.1.1. 산성[편집]성이 세워지는 위치에 따라 산성, 평지성, 평산성을 구분한다.7.1.1. 산성[편집]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상세에 대해서는, 산성 문서를 참조 하십시오.산성은 문자 그대로 산에 세운 성으로 드물게 평지에 가까운 낮은 구릉에 세운 성도 산성으로 불린다.산성은 산봉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장벽을 삥 둘러싸고 마치 머리띠를 두른 것처럼 보이는 테 메일식(머리띠식)과 성 안에 넓은 계곡을 포용하고 계곡을 둘러싼 능선성에 따라서 성벽을 만든 테뫼식이 있다.산과 구릉지에 짓는 특성상, 성 규모는 거의 그만큼 크지 않고 삼국 시대의 국경선 지역에 설치된 산성은 산성이라기보다는 거의 돈태 수준에 가까운 작은 산성이 보인다.높은 지형에 위치하는 감시와 방어가 유리하고 산을 끼고 지어진 성이어서 공성 무기의 사용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 있고 복잡한 방호 시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하지만 지형상, 식량과 물이 떨어지면 치명적이라는 단점이 있다.7.1.2. 평지성[편집]평지성은 평야 지대에 들어서는 성을 말한다.평야 지대의 특성상 지형적으로 방어하는 것이 산성보다 불리하고, 높은 성벽과 복잡한 방어 시설을 만들어 성의 방어력을 극대화시키고 적의 침입을 막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초기에는 산성과 산성과의 공존이 일반적이었지만 시대가 발전하는 건축 기술력 향상으로 수성 기술이 점차 발전하게 된 산성보다 일반화된다.그러나 방어력 증강을 위한 투자에 비해서 방어력이 크게 늘지 않고 적의 대형 공성 무기가 쉽게 성벽에 접근할 수 있어 주변이 완전히 평야인 경우를 제외하면 최대한 평야의 가운데도 고지대를 취하거나 적어도 성 내부에 조금이라도 더 높은 지대를 포함하고 내성을 만드는 것이 흔하다.이렇게 하면 적어도 성벽이 개통해도 일부 지역은 살아남은 농성전을 계속할 수 있다.7.1.3. 평산 성[편집]히라야마 성은 산지와 평지를 모두 성벽으로 이어지는 성을 말한다.평지성과 산성의 장점을 모두 갖추고, 과거 고려/조선 시대의 개성/서울 성곽과 고구려 평양 성, 백제 사비성, 동래 읍성, 수원 화성이 이런 히라야마 성에 속한다.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지형 조건이 평지의 옆에 험한 산이 붙어 있는 등 여러 조건이 딱 맞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평산 성을 짓고 싶을 때 마음대로 세우지 못하고 그 수가 적다.그리고 제대로 세우지 않으면 평지성도 아닌 산성에서도 없는 것이 양자의 약점을 겸비한 망작이 되기 쉽다.게다가 성 안에 사는 인구 수보다 성벽이 너무 길다 문제점이 있다.실제 히라야마 성이었다 읍성과 한양과 개성으로 성벽이 있는 송악산, 용 물 산, 북한산, 남산 등 밑을 보면 일단 개성에 갈 수 있을지는 뒤로하고 민가가 하나도 없고 성벽 주변에 비해서 사람이 거주하는 구역이 평지성보다 제한적이다.당연히, 성벽에 따라서 배치해야 할 병사 수도 외부의 지원군 등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자주적으로 방어하기 어렵고 불리한 구조이다.7.2. 재료[편집]평산성은 산지와 평지를 합쳐 성벽으로 이어지는 성을 말한다. 평지성과 산성의 장점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과거 고려/조선시대 개성/서울의 성곽과 고구려 평양성, 백제 사비성, 동래읍성, 수원화성이 이러한 평산성에 속한다.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지형 조건이 평지 옆으로 험준한 산이 붙어 있는 등 여러 조건이 딱 맞아야 하기 때문에 평산성은 짓고 싶을 때 마음대로 지을 수 없고 그 수가 적다. 그리고 제대로 짓지 않으면 평지성도 아니고 산성도 아닌 것이 양자의 약점을 겸비한 망작이 되기 쉽다. 더구나 성 안에 살고 있는 인구수에 비해 성벽이 너무 긴 문제점이 있다. 실제로 평산성이었던 읍성이나 한양과 개성에서 성벽이 있는 송악산, 용수산, 북한산, 남산 등의 산기슭을 보면 일단 개성으로 갈 수 있는지 여부는 뒤로하고 민가 하나도 없으며 성벽 주위에 비해 사람이 거주하는 구역이 평지성보다 제한적이다. 당연히 성벽을 따라 배치해야 하는 병사의 수도 외부 지원군 등을 수용하지 않는 한 자체적으로 방어하기 어려운 불리한 구조다.7.2. 재료[편집]8.1. 판타지[편집]각종 중세 베이스의 판타지 장르에서는 꽤 중요한 곳이다.이런 판타지상의 성은 대부분 유럽, 특히 독일의 성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다만 그 양식과 크기는 현실보다 더 심하게 과장된 경우가 많다.[23] 크고 멋진 성을 기사들이 지키고 있다 그런 풍경은 판타지에서 떼지 않아 설정상 가난하다는 왕국에도 백성은 굶주리고 있는데 왜 성채 하나는 숨이 막힘이 서있다.누가 무슨 돈으로 지었는지는 안 듣는 것이 예의.판타지 세계관에서 성의 존재는 갑옷을 입은 기사 정도 포기하기 어려운 낭만이다.게임에서는 국가의 중요 인물이 거주하고 거주 인구가 많고 즉 대도시인 것에 물건 수리, 술집, 훈련소 등 각종 서비스업자가 많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몇몇의 MMORPG에서는 성을 자신의 쿠란 or길드 or기타 등의 것으로 할 수 있다 공성전 시스템을 도입하였다.현실에서는 화약 무기가 보편화하는 성 개념이 몰락하기 시작했지만 화약 만큼 어쩌면 그 이상의 위력을 지닌 마법이 난무하는 판타지물에서는 여전히 성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화약 무기의 발전에 맞춰서 보면 총기 같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위력하도 적당한 마법이 등장하는 경우, 갑옷이 먼저 쇠퇴하고 그 이상의 파괴력을 가진 마법이 확산되면 판타지 세계에서 철근 콘크리트가 있기는 어렵기 때문에 고정식 방어 시설은 적당히 포기하고 제1차 세계 대전의 야전처럼 참호를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근본적으로는 판타지에서는 새로운 개념의 등장에 따른 사회 변화를 그다지 진지하게 구현하지 않기 때문이다.굳이 이유를 생각하면 다음의 이유가 생각한다.미개 종족이 여전히 냉 무기를 고수하고 있어 성의 방어력은 이전 시대에서 충분한 반면 그들의 병력 수는 턱없이 많아 일단 고정적 방어 시설은 필요하다.공격 마법의 화력이 강력한 만큼 방어 마법으로 성의 방어력도 증진시켰다.이런 경우 각종 대규모 마법진을 성에 설치하고 결계를 만들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보통 판타지로 마법사들은 자신들이 미리 준비하는 공간에서 매우 강력한 면모를 보이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이 국가 단위로 발전하고 성의 모습을 띠기도 한다.마법을 누구도 쓸 수는 없다.▲ 국제적 합의=오늘, 지뢰나 클러스터 폭탄, 핵무기가 금지된 것처럼 인도적 이유 등으로 금지하기로 합의했다는 설정.히어로 메이커에서는 “마법만 있으면 성은 쉽게 함락할 수”라는 설정이지만, 대량 학살의 위험성으로 전쟁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형태로 균형을 취하고 있다.8.2. 게임[편집]에이지·오브·엠파이어류의 게임에서는 기본적으로 성이 등장한다.단일 건물로 구현하기 위해서 대개 성관(성관)의 모습을 하고 있다.매우 튼튼한 방어 시설에서 대개 후반에 등장한다.궁합의 뚜렷한 게임이므로 공성 무기 없이는 부수기 어려워지고 있다.에이지·오브·미소로지ー에서는 “fortress”(그리스),”Migdol stronghold”(이집트),”Hill Fort”(노르웨이),”Palace”(아틀란티스)[24]와 각각 이름이 다르다.공민관(town center)는 성채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주민을 넣어 성처럼 쓸 수 있게 되며 매우 튼튼하다.라이즈·오브·네이션스에서는 같은 건물이 시대에 “진지(fort)-성(castle)-요새(fortress)-보루(redoubt)”에 이름이 바뀐다.비슷한 역할의 노 측의 건물이 “탑(tower)-성채(keep)-방안(stockade)-벙커(bunker)”.”성채”과 “벙커”는 일반적으로 큰 방어 시설에도 사용되는 말이라 다소 혼란이 있다.라이즈·오브·네이션스에서는 이상점도 실재하는 건물로 등장하지만 붉은 요새 같은 것은 더욱 강력한 성으로 기능한다.슈워처 크래프트 시리즈에서, 워크래프트 3인간 얼라이언스의 메인 기지 타운 홀(town hall, 공민관)는 킵(keep, 성채)-캐슬(castle, 성)식으로 업그레이드된다.오ー크홋도의 그레이트 홀(great hall, 대전당)도 스트롱 홀드(stronghold, 보루)-포트 레스(fortress, 요새)[25] 같은 방어 시설 명칭을 갖는 건물에 업그레이드된다.이는 워크래프트 2에서 내려온 것이다.휴먼은 석공 기술 업그레이드를 통해서 건물을 강화시킬 수 있고 해당 업그레이드가 끝난 캐슬은 게임 내에서 거의 가장 튼튼한 건물이다.다만 기능은 없어 우주로 대표되는 인간의 축성술(?)은 가드 타워를 통해서 구현되고 있다.앤 데드·카루 디아는 네크로 폴리스(죽음의 요새)-홀·오브·더·데드(망자의 전당)-블랙·시타델( 검은 보루)에서 2티아에서 공격 기능도 갖췄다.월드·오브·워크·뗏목의 도시 달러란에는 “violet hold”와 “violet citadel”의 양쪽이 존재하고 번역어를 구분할 필요가 생겼다.관례대로 “violet hold”가 “보라 색의 요새”으로 “violet citadel”은 “보라 색의 보루”였다.보라 색의 성채는 단지 NPC가 한 마을에서 보라 색의 요새는 감옥으로서 던전으로 기능하고 있다.”citadel”에 주요 NPC가 거주하면서”hold”는 완전히 군사 시설임이 상기 정의에서 구별과 잘 맞는 것 같다.슈워처 크래프트 시리즈에서 영향을 받은 국산 RTS킹덤 언더 파이어에서 인간 연합은 “킵 캐슬 로드 캐슬(lord’s castle)”에 비슷하게 업그레이드되지만 암흑 동맹은 포트 댓글에 그대로다.스타 크래프트에서는 아도우은의 성채라는 건물이 있으나 군사적 기능은 없다 업그레이드/테크용 건물이다.스타 크래프트 2에서는 태 랜 커맨드 센터를 행성 요새(planetary fortress)으로 전환할 수 있다.문명 5에서는 노동자를 이용하고 5턴(속도 기준)을 소모하고 요새(fort)을 지을 수 있어 장군을 소진시키고 성채(citadel)을 지을 수 있다.요즘은 50%, 보루는 100%방어 보너스를 주고 보루는 턴이 끝날 때, 근처의 유닛에 30씩 타격을 준다.보루는 전형적으로 성형 요새처럼 보인다.역사적으로 유명한 성은 신비적으로 구현되어 이것 저것 군사적 효과를 가져온다.시나리오의 하나인 1066년:바이킹의 운명이 걸린 해로는, 위에서 언급한 모ー토앙도베이리ー를 세울 수 있는데, 장군을 소모한 성채 같은 기능이기 때문에, 상당히 사기 시설이다.문명 6에서는 요새 건설 기능이 공병으로 바뀌고 위인 소모 시설은 사라졌다.그 대신 특수 지구의 하나인 주둔지(Encampment)가 도시처럼 고유 체력을 갖고 방어 시설로 추가됐다.9. 관련 문서[편집]칼 모서리 대서양 방벽 드럼 요새 마사다마지노상브레스토 요새 세바스토포리에발에말 요새입니다세 포 B-17[26] 캄캄한 이 요새의 안이 가장 편리하다한반도 건축 관련 정보 관광 관련 정보 역사 관련 정보 10. 남우이키에 등록된 성 목록[편집]10.1. 아시아[편집]10.1.1.대한민국[편집]경주 월성-신라의 궁궐이었다.공산성-백제의 산성·관문성-울산의 신라 성.국내성-고구려의 2번째도.관미 성-백제 성.구이저우 성-고려 시대에 활약했다.읍성-잘 보존된 관광지로 유명하다.남한산성-유네스코에 등록된 병자호란의 아픔을 간직한 성·달성-대구 달성 공원의 그 달성이다.전 삼국 시대의 대구 유력군 소장 세력이 다스리던 성으로 알려졌다.당나라 샹청-신라가 중국 국가와 직접 연결하는 데 꼭 필요했던 곳이다.오노조-신라와 백제의 접전지.세미 성명 활성-신라 성·몽촌 토성-풍납 토성과 함께 백제 최초의 도시라고 추정된다.박·처선-압록강 하류의 고구려 성.중국 동북 공정으로 만리장성으로 개조된 불운의 성이다.보름 성-고구려 성.북한산성-서울 북부의 방어를 맡은 성.부여 성-고구려의 천리장성의 북단.사비성-백제 마지막도.분산성-가야죠.삼년 산성-신라 성.공고함과 특색 있는 4개의 문으로 유명하다.상당 산성-청주의 조선 시대의 성·서생포 왜성-가토 기요마사가 쌓은 일본식 성·수원 화성-유네스코에 등록된 한국 성의 최종판.수정성-고구려 궁궐 내 수정으로 만들었다는 성.순천 왜성-코니시 유키나가가 정유재란 때 축성한 일본식 성.신죠오-고구려 성.아차 산성-바보 온달이 싸우고 죽는 성.안시 성-안시 성 전투로 유명한 고구려 성.오녀 산성-고구려 최초의 도시.랴오둥 성-물, 당나라를 여러 차례 도청한 고구려 성.소 프랑스 산성-신라의 성.울산 왜성.-가토 기요마사가 죽을 뻔했다 왜 성.위례 성-백제의 수도 이름.전주 성-풍남 문이 유명하다.정족 산성-병인양요에서 유명한 성.진주성-임진왜란 때 제1,2차 진주성 전투의 현장.단양 아카기-신라 진흥왕이 세웠다는 단양 아카기비로 유명한 성이다.만리 장성-고구려와 고려가 각자 따로 쌓은 성.평양 성-고구려 마지막도.풍납 토성-몽촌 토성과 함께 백제의 수도로 추정되는 성.한양 도성-조선 시대 서울의 기본 방위와 경계를 담당한 한성·행주 산성-행주 대교. 10.2. 시리아[편집]알레포 송차클라크 데 슈발리에 10.2.1 일본 [편집]일본의 성 일본 100명 성 고 경-옛에도 성.현재의 일본 황궁.옛 여관 구마모토 성 니죠죠타케다 성 마쓰에 성 슈리성 아즈치 성 오다와라 성 오사카 성 히메지 성 히코네 성에도 성 10.2.2.2. 중국[편집]만리장성 북경 성-문화 대혁명으로 소실됐다.시안 자금성 평요 고대 도시-중국에서 가장 온전히 보존된 성곽 도시.선양 고궁 10.3. 유럽[편집]10.3.1. 독일[편집]노이슈반슈타인 성 엘츠성 10.3.2. 러시아 [편집]크렘린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10.3.3 영국 [편집]런던 톱 10.3.4 폴란드 [편집]말보르크 성 10.3.5. 프랑스 [편집]칼카손 – 중세시대 유럽 성벽도시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다.10.4. 미국[편집]10.4.1. 캐나다 [편집]퀘벡시-북 아메리카에서는 드물게 성벽 도시이다.10.4.2.미국[편집]허스트 캐슬-20세기에 지어진 성으로 미국 내 소수 성이다.11. 가상의 성·요새[편집]허스트 캐슬 – 20세기에 지어진 성으로 미국 내 몇 안 되는 성이다.11. 가상의 성·요새[편집]자세한 설명은 해당 문서에서.자세한 설명은 해당 문서에서.https://www.youtube.com/shorts/oeCuJBt21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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